젊은 세대들이 무속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게 실제로 맞는지, 맞다면 그 이유는?
문화 콘텐츠 산물에 대단히 많이 무속과 관련된 문화들이 소개가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은 그 부분들을 재활용하면서 젊은 세대들이 무속에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하는 건 사실이다. 과거에 우리가 정말 가정에 큰 문제가 있었거나 자기에게 정말 진지하고 큰 어려움이 있을 때 무당을 찾는 것과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SNS 때문에 무당들이 스스로 자기네들의 이야기들 재미있는 이야기들 소소한 얘기들 일상적인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훨씬 더 젊은 층들이 접근하기 용이한 그러한 통로가 되고 있어서 대단히 거리낌 없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무속인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서 어떻게 바뀌었다고 규정짓는지?
첫 번째로 예술 영역에서 전통 문화의 하나로서 실제로 무속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 게 190 한 60~70년대 이후 문화재 보호법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고 한국의 전통 예술인으로서 이제 무당들이 지정이 되게 되면서 소위 한국 문화유산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근데 반대로 점을 보고 무당을 찾아가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문제는 문화 예술인으로서의 무당과는 또 다른 영역의 문제이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무속의 이미지라고 하는 것 자체가 공적인 영역에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전통 문화의 하나로서 자리매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점을 보거나 무당을 찾아가지고 굿을하거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영향 부정적인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라고 생각이 돼요. 아니면 정확하게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 문제가 아직도 남아있다.
근데 젊은이들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하면 굳이 내가 다른 어떤 기존에 받아왔던 교육적인 활동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이미지에 내가 굳이 그것을 따를 필요가 있을까라고 하는 의문을 갖고 있는 주체적인 경향을 보인다.
인류학자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 비교 연구를 통해서 선진국이 될수록 무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지?
1980년대 이후로 서양에서 네오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일종의 새로운 영성 운동이 있다.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 서구인들이 이성의 진보 과학적인 세계관에 대해서 회의를 하게 되는데 이제 서구의 종교만 가지고는 사실 자신들의 문제가 다 해결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구 종교라고 하는 기독교도 너무 제도화되어 있다 보니 다른 영역에서 이제 히피 운동을 비롯한 대안적 영성들을 찾기 시작했다. 히피 운동 이후에 샤머니즘이 사실은 새로운 영성을 추구하던 사람들에게 일종의 새로운 어떤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환각식물을 통해가지고 초월을 경험하는 것은 멕시코 지역 등 다른 지역에서는 많이 있었고, 샤머니즘 전통이라고 알려져 있다. 새로운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환각제를 흡입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해 80년대부터는 안전한 형태의 경험을 해보고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형태로 활용이 많이 되고 있고, 지금도 그 운동들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국가와 집단 차원에서 무속에 대한 트렌드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았는데, 개인 차원에서 무속에 대해 조금 더 심취하는 개인 유형이 있을까?
아직은 없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연구는 없는데 다른 연구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라고 하는 심리학 종교 심리학자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종교에 훨씬 더 심취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헬티 마인드(healthy mind)와 소울(soul, 영혼)을 구분했다. 헬티 마인드는 일종의 건강한 낙관적이고 대단히 낙천적인 사람 유형이고, 소울은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궁금하거나 무언가 조금 연약해 보이는 영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훨씬 더 종교적인 어떤 생활에 침투하거나 종교적인 사고에 더 잘 접근하는 사람들이 이제 소울인 사람들이다. 불안정하다고 하면 조금 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인생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낙관적이지만은 않게 되기 때문에 문제를 처리할 때 이런 일들이 왜 나에게 생겼을까라고 한 번 더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의 유형이다. 이런 사람들이 일단은 무속에 대해서 접근을 할 때는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을 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다른 유형의 사람도 무속에 접근을 하지만 이제 무속의 서비스를 활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소울 유형의 사람들은 무속을 훨씬 더 진지하게 접근하고 그 관계 기간도 길다고 하면 헬티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그리고 또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그러한 유형의 어떤 무속의 활용 패턴이 조금 있는 것 같다. 마음이 약해서 잘 빠진다고 얘기를 하지만 마음이 약한 사람이나 마음이 강한 사람이나 둘 다 무속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사실은 접근할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들은 열려 있다.
우리나라 무속인들이 점점 늘고 있는지?
늘고 있는데, 무속인이라는 표현에 대해 조금 불만이 있다. 무속인이라고 하는 용어 자체는 1990년대 초반에 아마 어떤 신문 기자가 처음 사용했는데 루핑 이펙트처럼 학계에도 통용이 되고 무당들도 사용을 하게 되면서 무속이라고 하는 범주가 워낙에 넓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루핑 이펙트, Looping Effect : 특정한 분류나 개념이 사람들의 행동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설명하는 용어)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동해안 지역 같은 경우에 가면 동해안 별신굿의 음악이 워낙 뛰어나기 학생들이 거기에 가서 굿을 할 때 그 연주를 하면서 배우는데, 그 사람들이 무속인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시는 사람들은 무속을 되게 싫어한다. 무속이 위계적으로 좀 더 아래에 있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문화적인 영향일 수도 있고 문화적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근데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무속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용어 자체가 문제가 많다. 점을 보러 간다라고 했을 때 찾아가는 곳들이 무당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실 거고 사주 보는 분도 계실 거고 타로도 포함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범주의 일을 봐주실 수 있는 사람이 늘고 있다. 대한성공경신연합회에서 애매한 무속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까지 다 가입할 수 있는 단체인데 20만명이 넘게 가입했다. 근데 지금 그 이후로 계속 늘고 있고 또 요즘에는 과거처럼 무당이 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꺼려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무당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4, 50만까지 보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무당이 됐으면 숨기려는 기질도 있었는데 이제는 공식적으로 확인이 되어서 커진 건지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이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건지 어떻게 해석하는지?
지금도 사실 가족에게 이야기 못하고 무업을 하는 분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오히려 실제로 무당의 수 혹은 신 내리는 사람들의 수 혹은 점을 보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다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훨씬 더 접근성 접근이 용이하고 실제로 사설 학원들이 되게 많다. 무업을 가르치는 사설 학원도 있지만 아까 말씀드렸던 사주 명리학을 가르치는 사설 학원도 많고 자기가 직업으로 그걸 할 수 있기 때문에 근데 이제 그 부분까지 무속의 범주인가 아닌가는 차치하고 어쨌든 전복과 관련해가지고 임원이 그렇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늘어나는 이유는? 돈이 되어서? 사회적으로 다른 직업에 대한 기회가 줄어들어 내 전문성을 활용해 이것을 해보겠다라는 것?
사주 명리학을 보아 가지고 점을 보는 것 자체 혹은 타로를 배워서 점을 보는 것 이것들을 하나의 직업으로 그냥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는데 그 이외에 그럼 신내림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그거는 자발적으로 그냥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신을 받아야 하는, 신내림 내림굿을 하고 이제 소위 신 내린 무당이 되는 건데 그거 같은 경우에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과거에는 끊임없이 부정하다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신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한다면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태까지 가지 않고 누군가가 너에게 신이 왔다 너는 무당을 해야 될 팔자인 것 같다 그러면 그런가요 라고 하면서 훨씬 더 진단을 수용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공적인 세계 혹은 사적인 세계 다양한 세계에 동시에 우리가 걸쳐서 살고 있는데 여전히 공적이고 집단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어떤 무속과 관련되는 것들을 꺼려하고 거부하는 것은 있지만, 일상의 영역이라든가 사적인 영역에서는 안착을 했다라고도 얘기를 할 수 있다.
다른 문화권에 비해서 샤머니즘이 우리나라에는 좀 더 보편적인 것인지 아니면 해외도 비슷비슷한 추세인지?
한국 같은 경우에는 사실 샤머니즘 전통 혹은 무속 전통이 아주 철저하게 단절된 경험이 없다. 그런데 소위 샤머니즘의 영역에 있어서 본향이라고 얘기되어지는 시베리아 지역이나 다른 지역들 같은 경우에는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혹은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샤먼들이 자기의 무구들을 불태워야 되고 해가지고 극심한 단절을 겪었다. 그래서 이제 부활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제 그들 안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샤만 전통은 대단히 근대화된 형태의 전통이기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샤머니즘 전통일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그에 비해서 한국 샤머니즘 같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이 한국 샤머니즘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긴 하겠지만 물론 정치적인 스캔들과 관련한 문제도 있겠지만 또 다른 문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내림풋을 하는 경우도 있고 와서 내림풋을 받고 외국에 가서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보여지는데 예전에 2006년에 한국에 맨 처음에 독일 여성이 와서 내림굿을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한 10여 명이 그 이후로 또 와서 내림굿을 하기도 했었다. 한국 샤머니즘은 아직 서양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고통들을 다 종교적인 방식으로 설명해 주지 못하는 설명 체계를 한국 샤머니즘에서는 여전히 가지고 있고 이제 그게 설득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샤머니즘을 접하는 방식 중 하나가 점 보러 가자는 표현인데, 점집 형태의 무속 문화는 언제부터 지금의 형태를 갖췄는지? 조선시대나 그 이전에도 점집이 존재했는지?
점집은 항상 있었다. 예를 들어 토정 이지함의 토종 비결이라고 하는 그 책 자체가 사실은 민간층들이 훨씬 더 쉽게 소일거리로 그분이 민간 사람들에게 점을 봐주고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와 같은 전 문화는 아주 고려로부터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지금 형태의 그런 한국 무속과 관련돼서 굿을 하거나 신이 들어오거나 이와 같은 형태로 보통 한국 샤머니즘이 틀이 잡혔다라고 보는 건 대략 고려 시기 중후반 정도로 본다. (12세기) 이렇게 점집의 형태로 고려시대 때부터 이어져 왔던 게 우리나라는 계속됐다면 해외도 타로점이나 이런 것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화 발전했다고 봐도 되는지는 조금 다르다. 타로도 그렇고 물론 당연히 진화 발전해 왔을 테지만 페이거니즘 이교(Paganism,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와 같은 주류 종교가 아닌, 고대의 다신교나 자연 신앙을 통칭하는 용어)로 몰려 엄청난 탄압의 대상이 되고 그게 어떤 특정한 지역 안에서만이 아닌 서구 사회 전역에 걸쳐서 이루어졌던 거기 때문에 대단히 큰 어떤 그 단절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있었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어 왔던 것은 있었다.
신의 간택을 받았다는 개념에 대해 외국에도 존재하는지?
그렇다. 1930년대 북태평양 지역 어떤 대탐사가 이루어지는데 당시에 시베리아 지역 몽골 중앙아시아 지역들을 포함해가지고 북미 지역 대부분의 어떤 샤먼 전통들을 연구를 했었다.그러다 보니 북미 지역 같은 경우에는 이제 메리슨맨(Medicine man, 북미 원주민 사회에서 영적인 치유자나 종교적 중개자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 주술사 주부(Shamanic Women)라고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이제 그게 한 샤머니즘 전통으로 이제 불리워지게 되지만 거기 같은 경우에는 사실 젊은이들이 광야에 나가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면서 무언가 초월을 경험하게 되면서 소위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건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베리아 지역 같은 경우에는 그게 혈연적으로 세습이 되거나 특정한 사람들만이 그것을 했는데, 그것도 일종의 신과 관련돼서 선택이라고도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시에 뉴욕 타임즈의 저널리스트가 북미 지역의 샤머니즘은 민주적인 샤머니즘(누구나)이고라고 이야기했고, 시베리아 지역 샤머니즘은 귀족 샤머니즘(세습, 상위 계층 샤먼이 주로 수행)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다.
신내림을 받는 메커니즘이 어떻게 되는지?
대부분 이제 신병을 앓는다고 한다. 신병을 앓는데 그 신병이라고 하는 것이 이유 없이 아픈 것이다. 그리고 병원을 갔는데 병명이 나오지 않고 약을 먹어도 잘 듣지를 않고 이와 같은 일들이 계속 지속이 되는 등 육체적으로 그런 일들이 있다. 정신적으로는 계속 꿈을 꾸면서 이상한 존재들을 만나거나 혹은 눈을 뜨고 있는데도 뭐가 보이거나 보이거나 근데 이제 귀신도 보이고 신도 보인다고 한다. 환시 환청인데 표현으로 환시 환청이라고 하면 없는 것을 본다라고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게 되는데 샤먼 전통에서는 그게 없는 걸 보는 게 아니라 있는 걸 보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계속 반복이 되면서 사회적으로도 고립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경제적으로도 되게 피폐해지게 되고 결국 그래서 이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 이것이 그게 전통적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해 왔던 무당의 신병 그리고 결국 신을 모시게 되면서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이 된다라고 얘기를 한다. 지금 같은 경우도 비슷한데, 그 강도는 조금 다를 수는 있다. 젊은 층에서는 그게 없어도 자기가 관심이 있어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신 이제 치료사로서 점쟁이로서 혹은 예언가로서 이러한 역할들을 다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신병이 걸렸는데 수용을 안하면 정말 개인의 삶이 크게 안좋아지는가?
신 내림을 받으면 극적으로 바로 이제 그때부터 완치되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실제로 이제 증상들이 점점 더 완화가 되어 가는 경우들을 많이 있다. 신병 앓으면 모두가 무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종교로 가서 극복했다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게 100% 신병이다라고 진단이 됐을 때 모두가 다 무당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결국에는 그걸 자기가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 문제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그걸 죽어도 나는 못 받아들이겠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복채라는 의미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무속 전통 내에서도 사람의 복을 산다고 한다. 운도 사고 복도 산다라고 그러지 그걸 공짜로 주는 것은 없다라고 얘기한다. 무속의 세계관은 이게 그냥 아낌 없이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되게 호회적인 관계에 기반하고 있다. 신과 인간의 관계도 호회성의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라고 본다. 그래서 복채 역시도 내가 가서 내 점괴가 잘 나올 수 있게 드리는 일종의 정성이다.
그분들이 미래나 문제점을 간파해 지향점을 설정해 주는데 모든 미래를 볼 수 있는 건가?
여러 만신들 무당이라고 하는 표현보다는 만신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훨씬 더 높이는 표현이다. 여러 만신분들을 만나보면 누군가를 보면 지금의 상황도 보이고 보인다는 얘기는 저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를 자기도 비슷하게 느낀다고 한다. 마음이 무겁다거나 혹은 그리고 또 어떤 파노라마 필름처럼 휙 지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앞일도 비슷하다. 근데 이제 그게 선명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고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에 따라서 점개가 훨씬 더 잘 맞았는지 잘 맞지 않았는지 그렇게 얘기를 한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점을 보는 사람 그리고 점을 보러 온 그 고객이 서로 같이 소통이 돼야 훨씬 더 잘 맞을 확률은 높다.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한다.
신의 종류
대한민국에 한 1980년대에 보고된 자료에 하면 김태권 선생님이라는 분이 한 273종의 신이 있다고 하셨다. 더 많을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데 이제 그리고 종류별로도 어떤 유형의 신들이 있는지를 말할 수 있다. 다들 어떤 기능이 조금씩은 달라요. 장군신이다 신장신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기는 저기 해로운 기운들을 몰아내고 칠성신이다 그러면은 아이들의 수명 장수 혹은 결혼 이런 것들을 담당한다. 근데 마찬가지 어떤 무속 전통 안에도 아주 높은 신은 있어요. 그래서 그 신은 근데 그렇다라고 해서 아주 구체적인 인간들의 세세한 문제까지 다 처리하지는 않는다.
신내림 받고 싶으면 개인이 노력해서 가능?
그게 정말 어려운 부분이긴 해요. 제가 이제 만나본 만신들은 그렇게 얘기를 하기도 해요. 신기가 되게 센 사람이 많대요. 일반인들 중에서도 우리 보면 예술가들 중에서도 많은데 그 사람들이 무당의 팔자는 아니다. 무당의 기운하고 어떤 신기를 좀 구분해야 한다. 내림굿을 하면 신의 길을 가는데 신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신을 잘 섬기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도 하고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남쪽 지역에 우리가 흔히 당골레라고 얘기를 하기도 하고 세습무라고 하는 분들은 신이 자기 몸에 실리지 않아도 무업을 하므로 이제 그러한 전통에서 보면 신하고 상관없이도 무당이 될 수는 있다. 강신무(신을 모시는 무당) 형태의 무당이 훨씬 더 우리에게 친숙하기도 하고 조금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그러한 전통이기도 하다는 측면에서 보면 어떤 신내림은 되게 중요한 어떤 무당의 어떤 길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라고 해서 그것이 곧 어떤 독립되고 성숙한 무당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신과의 관계라고 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세습무 전통은 일단 배제하고 강신무 전통에서 보면 신과의 전통은 대단히 중요한데 모셔야 할 신 그리고 내보내야 할 신 그리고 잠깐만 대접하고 또 가야 할 신 이 되게 다양하게 구분이 가능하다. 근데 무당이라고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이 만신이라고 하는 분들의 가장 큰 특징은 뭐냐 하면 신을 자기 몸에 직접 실리고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에 비친 무속 신앙과 실제 현장에서 연구자로서 연구한 것과 비슷한가?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남에게 보여주는 나와 또 나 혼자 있을 때의 나가 다를 수도 있는 것처럼 이 만신 분들도 자기네들 이너서클 그룹 안에 있을 때 행동 양식하고 외부자와 있을 때 행동 양식이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결국은 외부자가 나를 보고 있다라고 하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행동들이기 때문에 조금은 다르다.
무속 문화가 어떤 형태로 진화 발전이 된다면 우리나라에 순기능이 될 것인지?
과거에는 사실 공동체 문화가 조금 더 활발했을 때는 공동체들이 그 무당의 자질을 평가를 했다. 이상하다고 평가 받아 더 이상 찾지를 않으면 당연히 이제 사장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통제할 수 있는 그러한 장치가 별로 없는게 위험한 측면이다. 그래서 많은 만신들이 무당도 똑같은 사람이고 무당도 똑같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고 점을 보아서 점꾀를 낼 때도 상식적인 선에서 점꾀를 낸다라고 얘기한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 무당이 아니라 이 무당 찾고 이상하면 다른 무당을 최소한 세 번 이용해보자.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고 고객들이 무속 서비스를 활용하는 방식이다.